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문단 편집) == 사생활 == 결혼 시기 동안 성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몇몇 이들은 러브크래프트가 [[동성애자]]였다는 설을 제기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러브크래프트가 [[동정|성행위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는 해석도 있다. 심지어 러브크래프트는 '''30대'''가 되어서야 [[동성애]] 행위가 '''본능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얘기한다. 그렇기에 러브크래프트를 동성애자로 해석하는 것은 다소 무리수라는 의견도 있고, 편지 등으로 얘기한 의견이기에 이를 숨겼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특히 작품 내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묘사할 수 없는' 같은 묘사가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보고 생각한 자기혐오적인 표현이라는 해석도 존재. 사실 '''친구 여럿이 게이였기 때문에''' 더더욱 수상하게 여겨지는 것도 있다.[* 동성애자였던 로버트 H. 발로의 집에서 '''7주 동안''' 함께 산 적도 있다. 러브크래프트 사후 자신의 작품을 처리해 달라고 부탁한 이도 어거스트 덜레스가 아닌 발로. 다만 [[게이/오해]] 항목에서도 소개되어 있지만 단지 한 집에서 같이 산다고 해서 다 그런 사이인 것도 아니니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단적으로 [[이성애자]] 남성과 여성이 같이 산다고 해서 항상 그들이 커플 사이인 것은 아닌 것과 같고, 하물며 사회적으로 동성간의 동거는 여전히 널리 용인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게이인 동성과 동거한다고 해서 게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가난하니까 친구 집에서라도 먹고 살았겠지~~] 이런 경우 러브크래프트가 자기혐오적인 동성애자이고 이런 성향이 인종차별 등으로 분출되었다는 해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은둔자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왕성한 편지 교류([[https://www.hplovecraft.com/writings/letters/|참고]])를 통해 친구를 많이 사귀었으며[* 무려 '''97명'''의 친구들과 편지로 연락했다고 한다.] 돈이 궁할 때도 어떻게든 여행을 자주 다녔다. 멀리 여행을 안 나가도 자전거를 타고 그가 살던 동네를 빙 둘러다니기도 했다고. 그가 정말 [[히키코모리]]마냥 틀어박혀 산 건 그의 일생에서 불과 5년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 그가 잊힐 뻔했던 걸 다시 알려준 사람들이 그의 친구들이었음을 생각하면 역시 친구들을 잘 사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일부 소설은 친구들에게만 보라고 보내주고 출판할 생각이 없었는데, 그 친구들이 이야기를 읽고 대단하다며 다른 잡지에 러브크래프트의 이야기를 실어달라고 부탁해서 출판된 작품들도 있다. 그가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면 농담을 하거나 쾌활한 어투로 얘기를 하는 등 실제로도 친구들에겐 매우 친절한 인물이었다. 그의 편지를 보면 자신을 온갖 별명으로 다 부르는데, 그 중엔 자신을 [[압둘 알하자드]]로 지칭한 것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거기다가 왠지 음침할 것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친구들에겐 '''매우 유쾌하고 친절했다고 한다'''. 로버트 블록[* [[알프레드 히치콕]]이 영화로 만들어서 유명해진 소설 [[싸이코(소설)|싸이코]]의 원작자. 러브크래프트 등 위어드 픽션 작가들과 교류할 당시에는 동료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렸다. (1917년생, 1994년 사망.)]가 러브크래프트를 본딴 캐릭터를 자기 소설에서 죽이자 불쾌한 구석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재밌어 했다. 아예 압둘 알하자드의 서명을 담은 허가서를 보내면서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본뜬 캐릭터를 죽여도 좋다고 허가하기까지 했다.[* 러브크래프트가 임종 한 달전 쓴 <누가 블레이크를 죽였는가>라는 소설도 이 일화에 기반을 둔 작품이다.] [[파일:러브크래프트 캐릭터 살해 허가서.jpg]] 해당 허가서. 친구와 거리에서 권투하는 장난을 했다거나, 편지로 엄청난 책덕심을 보이며 책 다 사고 싶어서 죽겠다고 친구에게 늘어놓는 등 현대 공포의 거장이라느니 하는 명성만 듣고 으시시한 인물일 거라 생각하면 충공깽일 모습을 많이 보인다. [[파일:external/www.hplovecraft.com/1931-B.jpg]] 그 충격과 공포의 현장.[* [[1931년]] 7월 11일 브룩클린에서 찍은 사진으로, 왼쪽에 있는 인물은 러브크래프트의 지인 가운데 한 명으로 그 자신도 호러, SF 소설가였던 [[프랭크 벨내프 롱]](Frank Belknap Long Jr, 1903.4.27 ~ 1994.1.3).[[https://davidjrodger.wordpress.com/2013/01/03/wonderful-photograph-of-h-p-lovecraft-and-frank-belknap-long-sparring-in-brooklyn-on-july-11th-1931/|#]]] 사실 인종 차별 말고도 [[파시즘]]을 찬미하는[* 그런데 1920~30년대만 해도 미국의 경제난 때문에 파시즘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찰리 채플린]]도 미국에서 알게 모르게 파시스트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많자 분개해서 내놓은 작품이 바로 [[위대한 독재자]]다.] 등 현대사회에선 눈총받을 면모가 많은 사람이었다. 러브크래프트의 생전 절친이었던 새뮤얼 러브먼의 경우 러브크래프트가 그가 나왔던 꿈을 바탕으로 랜돌프 카터의 진술 등을 썼고 관계도 좋았고 러브크래프트 사후 그를 그리워하는 회상록을 썼지만, 나중에 소니아 그린이 러브크래프트의 인종 차별적인 면모(특히 반유대주의적인 면모)를 얘기해주고 난 뒤에는 그와의 우정을 부정했다. 왜냐하면 러브먼은 '''유대계''' 미국인이었으니... 이 때 그동안 러브크래프트에게 받은 편지를 모조리 불태워버렸을 정도로 실망했다. 또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거나 혹은 감정 표현을 싫어했던 면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니아 그린은 결혼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러브크래프트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오직 당신(소니아)의 존재에 매우 감사한다고 말했을 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